중동구 소개Home  >  정의화는  > 삶 그리고 추억

소년 정의화, 성공한 의사 CEO가 되기까지 국민대통합의 정치인 정의화 국회부의장 정의화

소년정의화청년정의화사랑하는아내 그리고 아이들의사 CEO 정의화

소년정의화 {웅동 띳골에서 제2의 고향 수정동으로}

앞으로는 호수처럼 잔잔한 진해만의 쪽빛 바다가 넘실대고, 뒤로는 우뚝 솟은 천자봉이 당당하게 그 위용을 뽐내는 반농반어의 작은 시골 마을인 경남 창원군 웅동면 소사리(현재 진해시 편입), 1948년 쥐띠 해 동짓(쥐)달,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쥐시)에 웅동중학교 교장 사택에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밤을 깨우고 있었다. 정의화의원은 당시 웅동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맡고 계시던 정윤호 선생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탯줄은 아버님이 끊는 물에 소독한 가위로 손수 끊으 셨다고 한다.

의로울 의(義)와 화목할 화(和)라는 이름은 할아버님 초산(樵山) 정순용 옹이 올곧고 화합하여 살라는 뜻에서 주셨다.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선생의 18대손인 정순용 옹은 약관의 나이인 16세에 영남의 고시에 장원을 한 한학자이며, 스무 살 때 경남 양산군수로 제수되었으나 일제의 단발령을 거부하고 오지인 영산(靈山)으로 피신한 선비였다고 한다. 정순용 옹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서당을 열어 후학 을 가르쳤고, 한편으로 한의학을 익혀 널리 인술을 펴기도 한 분이다.

부산 건국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아버님을 따라 처음 부산 땅을 밟은 게 1955년 여름이었다. 1학년 첫학기를 웅동초 등학교에서 보낸 후 바로 부산 중앙초등학교에 전학을 하게 된 것이다. 이사하고 첫 둥지를 튼 보금자리는 부산 동구 수정동이었다.

3.15부정선거에서도 불 수 있듯이 당시 제1공화국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 교육계의 부조리에 참다 못한 정윤호 선생은 6년간의 건국중학교 교장직을 그만 두고 59년부터 선친의 뜻을 이어 한약방을 열게 된다.

새한국의비전 남북의료협력재단 정의화의 특별한 취향 뉴스레터 신청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