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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다 파먹을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2019.02.27 12:02 | 1721
작성자 원숭이

 


        김일성

 

 

 [..... 식탁 위에 오른 원숭이 역시 김일성이 골을 다 파먹을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있어야 했다 ........ ]


 [..... 문의 손잡이는 상아로 만든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1회용이었다 ....... ]

 

 

김일성, 김정일은 연중(年中) 절반을 별장에서 놀아

귀순한 김정일 경호원의 증언

 


 
 김일성의 휴가는 길고도 길었다. 1년에 자모산 별장에서 보내는 시간만 한 달이 넘는 셈이니 그 수많은 별장에 가서 보내는 시간을 다 합하면 아마 1년의 반 이상은 별장 생활을 하는 셈이다.


김일성은 ‘인민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뛴다’고 선전해놓고 실제로는 별장에서 한가하게 쉬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별장에 오면 사냥을 하고나 별장 앞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산책도 가끔 했다.
 


  별장 안에 있는 문의 손잡이는 상아로 만든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1회용이었다. 김일성이 한번 손잡이를 잡으면 그것은 버리고 새로 만들어 달았다. 나는 버린 손잡이를 주워다가 잘 깎아서 담배 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김일성이 누리는 온갖 사치를 눈으로 직접 보고도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그런 호사를 누리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였던 자모산 별장을 관리하는 직원은 약 150~200명 정도였고 그 중 여자 직원은 반이 넘었다. 별장을 호위하는 병력은 약 5000명 정도였다.

 


  김일성은 초소구역 안에 만들어 놓은 사냥구역에서 사냥을 하곤 했다. 주변에 풀어놓은 노루나 꿩들은 사람들이 사육한 것이라 달아나지도 않았지만 김일성의 사격솜씨는 좋은 편이었다. 사냥도로 주변에는 콩밭과 옥수수 밭이 있었지만 일부러 수확을 하지 않아 동물들의 먹을 것은 항상 풍족했다. 꿩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훨씬 나았던 것이다.
 


  김일성은 프랑스제 헤네시 코냑을 즐겨 마셨다. 김일성은 이 지구상에서 최고라는 물건만을 사용했다. ‘아미산 대표부’라는 곳은 해외의 유명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을 정도로 큰 회사였는데 이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수입했다.

 
  김일성은 생선회를 가장 좋아했고 생선회 중에서도 잉어회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 김일성의 밥상 위에 올라가는 잉어회는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을 정도로 신선한 것이어야 했다. 김일성은 원숭이 골도 수입해다가 먹었다. 식탁 위에 오른 원숭이 역시 김일성이 골을 다 파먹을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있어야 했다.

 

  김일성 부자 두 사람이 이처럼 호사스런 생활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중앙당 39호실에서 주로 조달했다. 중앙당 39호실은 마약을 수출하고 골동품을 일본에 팔고 금을 채취해다 파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금 마련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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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풀코스의 만찬과 함께, 댄스파티가 밤늦게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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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김정일 부자와의 만남

 

평양정치학원 시절 김일성 부부와 김정일 형제를 만났다. 인민군 장교 복장을 한 다섯 살 김정일과 세 살 동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여러 번 평양정치학원을 방문해 가족과 지내곤 했다.


평양정치학원 졸업식에는 꼭 참석했다. 김일성이 임석하는 평양정치학원 졸업식은 호화찬란했다. 평양 최고의 서양 요리사가 모두 동원된 풀코스의 만찬과 함께, 댄스파티가 밤늦게까지 열렸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광복 직후에 인민을 위한다던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생활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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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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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초, 나는 파견 연구원들 그리고 파견 대학생들과 함께 평양을 떠났다. 두만강을 건너자 소련군용 트럭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워로실롭그라드 역’으로 태우고 갔다. 운전이 어찌나 난폭한지 차가 마구 요동을 쳐서 튼튼하지 못한 트렁크들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역에서 돼지비계가 둥둥 떠 있는 고깃국이 나왔다. 몇 해 만에 처음으로 먹어보는 고깃국이라 기대를 하면서 달려들었는데,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어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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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7.


[ ...... 야포탄을 실은 트럭에도 약탈한 저고리감, 치마감, 양복감 등 각종 옷감과 생필품을 빈틈없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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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7월8일 ‘음성 무극리 전투’이다. 승리감에 도취된 적이 장호원에서 충주 쪽으로 기세 좋게 나오는 것을 우리 연대가 매복공격을 해 6·25 開戰(개전) 이래 최대의 戰果(전과)를 올린 전투였다.


이날의 음성전투에는 강원도에서 우리 7연대를 따라 후퇴해 온 경찰도 매복공격에 참가했고 노획한 각종 자동차와 사이드카를 끌어내는데도 한 몫을 했다.


나는 적이 버리고 도망친 각종 차량에 서울에서 약탈한 옷감과 각종 상품이 가득 실려 있는 것을 보며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긴다’고 확신했다. 보급품을 실은 차량은 말할 것도 없고 야포탄을 실은 트럭에도 약탈한 저고리감, 치마감, 양복감 등 각종 옷감과 생필품을 빈틈없이 싣고 있는 꼴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군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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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조선으로 진격해 보니 물건이 산더미 같더라. 전쟁을 일으키기를 백번 잘한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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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헬싱키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을 때 북한군 고급 군관이 남조선으로 진격해 보니 물건이 산더미 같더라. 전쟁을 일으키기를 백번 잘한 것 같다고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북한은 전쟁 예비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해 놓고 있으며 나머지는 '남한 점령지'의 물자를 빼앗아 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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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에 따르면 김일성은 김정일이 사치를 싫어해 옷차림도 항상 검박하게 전투복과 같은 닫긴(넥타이 없는) 양복이나 잠바를 입고 다닌다며 식생활도 아주 검소해 어렸을 때부터 특식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윗 사람들에게 대접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내가 조밥에 된장을 먹으면 그도 조밥에 된장을 먹고, 내가 강낭죽(옥수수죽)에 소금을 쳐 먹으면 그도 강낭죽에 소금을 쳐 먹었으며, 지방에 나가 현지지도를 하면서 감자 몇알로 끼니를 때우면 그도 감자로 끼니를 때우곤 하였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김정일동지는 검박하게 생활합니다. 김정일동지는 사치한 생활을 좋아하지 않으며 사치한 생활을 탐내거나 사치한 생활을 하면서 랑비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권력을 이어 받은 자식에게 눈물 겨운 칭송도 서슴지 않는다.


김일성은 "김정일 동지는 지금 세상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지도자인데 그가 입고다니는 옷을 보면 얼마나 검박합니까. 동무들은 고급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멋쟁이가 되여 다니지만 그는 늘 수수한 잠바를 입고다닙니다. 나는 그가 수수한 잠바를 입고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옵니다"라며 남세스런 말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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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은 참새의 턱 밑 잔털만을 써서 특별히 제작됐다.

  .... 무려 70만마리의 참새가 필요했다고 ........]

 

 

귀순 한의사가 밝힌 김일성의 건강 비법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최고급 사과를 즐겨 먹었다.

일명'단백질 사과'다.

겨울에 누런 강아지를 사과 뿌리 부근에 묻어놓고, 봄에는 그 자리에 개구리를 묻어 양분으로 사용한 재배 방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 주 출간될 예정인 단행본 '김일성 장수건강법'(도서출판 팜파스.사진)에 담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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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덮고 자던 이불은 참새의 턱 밑 잔털만을 써서 특별히 제작됐다.

이불 한 채를 만드는 데만 무려 70만마리의 참새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의 별장 침대에는 각 신체 부위가 닿는 곳마다 몸에 좋은 약재를 넣어 놓았으며 베개는 32가지 한약재가 들어간 신선베개를 사용했다.


또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밟고 다니면 뇌와 관절에 충격이 가해져 수명이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바닥엔 반드시 푹신한 카펫을 깔았다'.

 

 '17세부터 20대 초반의 미모가 빼어난 여성으로 이뤄진 기쁨조는 천진난만한 소녀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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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70세에 '회춘'했던 비결은…

 
[ 동아일보 2005-10-29 ] 
 

 


《“당시 70세였던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남성의 힘’을 되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옛 소련의 저명한 유전학자며 의사인 겐나디 베르디셰프(75·사진) 박사가 27일 우크라이나의 노브이 TV를 통해 김 주석의 건강에 얽힌 비화를 공개했다. 베르디셰프 박사는 옛 소련 시절 레오니트 브레주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중국 덩샤오핑(鄧小平) 주석,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 등 사회주의권 지도자들에게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을 조언했다.》

 

김 주석의 요청으로 1982년 북한을 방문한 베르디셰프 박사는 “김 주석은 평양에 자신을 위한 장수연구소를 설치하고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한 덕분에 놀랄 정도로 건강했다”고 회고했다. 장수연구소 간부들은 모두 군 장성이었고 연구소장은 늘 김 주석을 수행했다.

 

김 주석은 베르디셰프 박사에게 정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것. 진찰 결과 어떤 효소가 신경계통을 침범해 성기관의 신경세포 간 화학적 신호 전달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효소의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이 들어 있는 약초를 캐기 위해 북한의 소년단이 총동원됐다.

 

이 약초에서 추출해 만든 약물로 효과를 본 김 주석은 “전처럼 성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흡족해 하며 베르디셰프 박사에게 인민우호훈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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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정일 이복동생 김현 8년전 처형돼"

 
 연합 |  20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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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6일 "김일성 주석에겐 김현이라는 숨겨진 아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는 오래 전에 이미 북한 당국에 의해 처형됐다"고 말하고 "처형 이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우드로 윌슨센터의 제임스 퍼슨 연구원은 지난 4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김정일 이후 시대에 김 위원장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원이나 김현을 명목상 지도자로 내세운 집단지도체제가 출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김현이 최근 들어 김 위원장의 현지시찰에 동행하고 있으며 북한의 관영 언론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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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일성 주석과 그의 안마를 전담했던 제갈 성을 가진 여성 사이에 태어난 김현은 생활면에선 김 주석의 아들로 대우받긴 했으나 처형전까지 무직이었으며, 생존시 마약중독이 심했고 심지어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여 '문제아'로 낙인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일부에선 김현이 노동당 행정부장인 장성택 국방위원의 호적에 올라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장 부장과는 무관한 사이였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말했다.


김 주석에게는 김현의 생모 제갈씨 외에도 여러 여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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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사생아 김현, ‘정통성 문제’로 숙청 가능성

[탈북 기자] 로열 패밀리 은밀한 사생활 北주민 전혀 몰라 

 

유관희 기자 | 2009-08-07   

 

 
최근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 김현이 2001년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의 사망 원인과 김일성-김정일 가(家)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한번 주목받고 있다.

김일성과 아주 많이 닮은 것으로 알려진 김현은 생전에 마약을 복용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최근 일부 보도에 따르면 2001년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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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은 자신이 북한에서 직접 본 김현이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임을 자세히 서술했다. 김현은 1971년에 김일성과 담당 간호사의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私生兒)다.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성혜림도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을 출산했다. 결국 환갑 나이인 김일성과 갓 서른 살에 접어든 아들이 동시에 ‘불륜’으로 아들을 얻은 것이다.


이한영의 수기에는 김현에 대해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장현’이란 가명으로 자신의 호적에 올려 놓았다고 밝혔다. 김현은 1979년 2월 모스크바에서 자신과 동갑내기이자 조카가 되는 정남과 함께 지냈고, 그 해 9월부터 모스크바에서 공부했으며 김일성의 담당 간호사였던 그의 생모는 장현의 이모로 둔갑시켜 함께 지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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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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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상어날개탕(야자열매 속을 파고 상어지느러미 수프로 채운 것), 뱀장어 캐비어, 코야(**돼지 통구이), 물고기 용정차(중국산 고급녹차)풍 철판구이, 비둘기 간장찜,
염소고기 샤슬리크(러시아식 바비큐), 라클레트(프랑스산 치즈를 가지와 감자 위에 얹은 것), 자라 찜….

 

일반인들이라면 들어본 적도 없을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한 이 식단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녁식사 차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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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을 하다 보니 재료는 전세계에서 수입했다. 후지모토씨는 “중국 신장(新疆)성으로부터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두리안·파파야· 망고 등 열대과일, 체코에서 생맥주, 덴마크에서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캐비어(철갑상어알), 일본에서 어류를 수입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화제가 됐던 주석궁의 고급 술에 대해서도 그는 “주석궁에는 1만병의 술을 모아놓은 술 창고가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에도 위스키, 코냑을 비롯, 일본 청주까지 망라된 술 창고가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마시는 술은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XO’였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토씨는 이 화려한 식단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림표에는 그날의 주 메뉴만 실릴 뿐이고, 실제 식탁에는 ‘반찬’으로 고기와 생선도 나오고 반찬의 양도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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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던 1993년에 김정일 가족이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내에서 먹을 도시락 준비를 위해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도시락을 만들었다.


과일사러 싱가포르에,
철갑상어알을 사러 러시아와 이란에,
그리고 요리 재료 구입을 위해 중국, 유럽,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게 한다.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씨가 2001년 4월 중순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성게알 요리 재료를 사러 나갈 때는 김정일이 1만5000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요리 재료를 사러 갈 때 재료비가 200만~300만 엔 정도 된다한다. 일본의 직장인들이 매달 30만엔 정도 받는다고 할 때 그 열배정도니....

1991년 다랑어를 사올 때는 400만 엔을 들인 적도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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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중순쯤이면 정남이의 생일선물을 사러 선물구매단이 출발한다. 金日成(김일성) 父子(부자)의 집무실 및 공관에서 쓰는 모든 물품을 조달하는 호위사령부 2국9부 부부장 강상춘 상좌가 구매 책임자다. 강부부장은 일본을 시발로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독일과 오스트리아까지 들러온다. 선물은 해마다 100만 달러어치를 사온다. 이 금액은 강부부장에게서 직접 들은 액수다.

 

생일선물에는 정남이의 옷이나 신발류 등은 물론, 새롭게 등장한 모든 놀이기구가 포함된다. 특히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전자오락 기구는 값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 다 구입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선물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가 있고, 도금한 장난감 권총도 있다.각종 놀이기구와 장난감은 나이 먹은 내가 봐도 현란할 정도였다. 정남이 놀이방(오락실)은 규모가 300평쯤 된다. 오락실은 매년 생일을 기준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선물이 도착하면 5월9일경 진열된다. 이튿날까지 안 보여준다. 정남이는 5월10일 원수복을 입고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김정일의 손을 잡고 오락실에 들어간다. 오락실에 들어가서 선물을 둘러보는데 金正日은 대충 돌아보지만 정남이는 하나하나 만져보고 움직여본다.

 

정남이의 생일 5월10일이 되면 관저의 모든 관리원들과 근무자들에게 정남이 이름으로 선물을 하사한다. 조그만 트렁크에 인삼주나 각종 통조림, 양복지 한 벌, 고급 인삼비누 등을 넣어준다. 이 하사품은 생일 선물 비용 100만 달러와는 상관없이 아버지 金正日이 따로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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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 2세 정도에 이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장난감을 주면서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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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법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균등히 제공되지 않고 정치적·계급적 지위와 성분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김일성·김정일의 저작과 이데올로기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탁아소에서는 말을 알아듣고 배우기 시작하는 만 2세 정도에 이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장난감을 주면서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일성 원수님 감사합니다'를 따라 하도록 반복시킨다.

 

유치원에서도 제공되는 모든 물품을 수령이 베푸는 것으로 교육하고 식사나 간식시간에 김일성에게 감사하다고 복창하도록 한다.


 취학 전 가치판단이 서지 않은 시기부터 자극-반응의 조건반사적 교육을 실시하여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학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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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헌법 ....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 ......    ]

 

  2013.8.

 

이석기 집 액자 ‘이민위천’은 김일성 좌우명

   
“이석기 의원이 ‘지하조직’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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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정원은 이 의원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 벽에 걸린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액자 속 글귀가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좌우명인 것으로 보고 북한과의 연계여부를 수사 중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일성은 지난 1992년 4월 발행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민위천은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라고 밝혔다. 김 주석 사망 직후인 그해 7월 22일 평양방송도 “김정일 위원장도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2012년 4월 13일 개정된 북한 헌법 서문에서도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라고 명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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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82901030127255002

 

 

 


로드먼의 방북목적과 진실

 

장진성  탈북 작가
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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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인 로드먼의 방북을 마치 김정은을 존경하는 세계의 민심으로 왜곡선전하고 있습니다. 하긴 폐쇄의 나라인데다 국제사회가 인류의 악으로 규정한 김씨 일가를 만난다는 것이 외국인들에겐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으로서는 평양을 찾아와주는 것 자체가 귀한 선전 증거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이어 9월 또 다시 평양을 방문했던 로드먼도 역시 북한 정권의 선전과 아무 상관없는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일 뿐입니다. 오히려 로드먼은 평양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이란 이름 석자도 알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한 방송국의 제안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갔던 것이 첫 인연이 되어 이번 9월에도 또 다시 평양을 가게 됐던 것입니다. 로드먼은 평양에 가기 전 현재 북한에 구류 중인 재미교포의 귀환을 성사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을 만나러 가기보다 자국민을 석방시키기 위한 구출외교 목적으로 방북 한 셈입니다.

 

먼저 로드먼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린다면 그는 1961년 5월 13일 생으로서 키는 204cm, 체중 95kg의 거인입니다. 1986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입단하여 미국 프로농구 NBA 7년 연속 리바운드 왕의 자리에 등극했던 유명 농구선수입니다. 로드먼은 "악동"이란 별명으로도 유명한데요, 잦은 싸움도 문제였지만 사생활이나 심지어 머리와 옷차림까지도 제 멋대로였습니다. 때문에 로드먼이 김정은을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일부 언론들에선 '두 악동이 만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이름도 모르던 로드먼이 지난 2월 왜 평양을 방문했었던 것일까요? 당시에는 북한이 장거로 로켓 실험과 핵실험 협박으로 정세를 긴장시키던 때여서 일부에선 스포츠외교를 내세운 미국 정부의 특사자격일 것이란 억측도 나왔었습니다. 하여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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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먼의 방북은 자의적 결심이나, 농구를 좋아하는 김정은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는 HBO라는 케이블 TV방송이 있습니다. 이 방송국은 전쟁 중이거나 폐쇄적,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만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하거나 편집 물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이런 희소성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여기 뉴스 쇼는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HBO방송국은 이런 자체 방송 특성상 3대 세습을 이어가는 북한의 폐쇄성을 주목하게 됐고, 하여 프로그램 기획 목적으로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를 섭외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 다음으로 좋아했던 인물이 아마 마이클 조던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농구 광이었기 때문에 유명 농구선수가 방북 하면 얼마든지 만남이 성사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면 TV 쇼의 목적도 충분히 타산할 수 있다고 타산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선수인 마이클 조던에게 방북을 제안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로드먼이 호화로운 사생활을 유지하느라 돈이 늘 부족했기 때문에 HBO는 그를 마이클 조던 대타로 섭외하는데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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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먼은 고려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김정은의 환대로 39층을 통째로 빌려 쓰게 됐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직접 요리사와 음식을 보내줘서 매끼마다 고급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드먼이라도 그렇게 좋은 음식을 매끼 먹을 수 있다는데 대해 매우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특히 매끼마다 불란서 고급 포도주가 나와 방북 일행을 흥분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HBO방송국의 촬영가들 중 한 명이 생일이었는데 김정은의 지시로 생일상에 고급 샴페인까지 나와 감동했다고 합니다. 2월 28일 농구 관람이 끝난 후 김정은과 함께 했던 파티에서는 너무 독한 평양소주를 많이 마신 탓에 다음 날 아침 일어났더니 선수 중 한 명이 욕조 안에 들어있었다는 일화도 알려주었습니다.

 

평양의 기이한 풍경에 대해서도 로드먼 일행은 깊은 인상을 가졌습니다. 평양시가 전반적으로 어둡고 침침한데다 마치 자기들이 가는 곳마다 전기가 따라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로드먼이 김정은과 농구관람을 위해 경기장에 등장했을 때는 관객들이 거의 10 분 넘게 만세를 부르며 박수를 쳐서 지루했다는 것,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했다는 것입니다.

 

로드먼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때는 사인을 잘못했을 때였다고 합니다. 고려호텔 아가씨들이 김정은과 로드먼의 얼굴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을 들고 왔을 때 사인해달라는 관심으로 잘못 알고 사진 위에 사인을 해버렸는데 그 순간 항상 웃던 아가씨들이 화를 내고 쏘아보다 못해 야단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로드먼은 김정은의 신격화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는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뉴포커스 통신원의 제보에 의하면 로드먼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 북한에선 "장군님의 농구발전 정책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가 평양을 찾아왔고, 장군님의 인품에 감동받았다."고 선전한다는데 사실 이용당한 사람은 김정은입니다. 로드먼에게 돈도 벌게 해 주었고, 구금중인 미국인을 귀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도주의자로 부각시켜줬으니깐요.
 

 

 

 

[ ...... 김정은의 몸 보신을 위해서는 마리당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원숭이도 수입 ........      ]

 


변태성욕 채워줄 김정은 기쁨조의 실체

2016년 한해에만 기쁨조 속옷 비용으로 38억 지출

 

허우 올인코리아 기자 2018-12-09

 

변태적인 성적욕구에 봉사하는 김정은 기쁨조의 실체

2016년 한해에만 기쁨조 속옷 비용으로 38억 지출

 

△성욕해소 위한 ‘만족조’두고 여성을 성노리개감 삼아

△행복조(마사지) 가무조(춤과 노래) 행사조(이벤트)도 운용

△전국에 2천여 명두고 국가원수인 김정은이 관리 운용

△오늘날 정부가 나서 자기 인민을 성노예로 운용하는 곳은 북한이 유일

△실제 키 170cm 안 되는 김정은, 키 큰 서구형 미인이 ‘로망’

△선발되면 김정은 관저와 별장 초대소에 성적 봉사 도구로 근무

△노동당 직원이 해마다 전국 여고 돌며 미모 학생 추천 모집

△소학교 돌며 9-10세 얼굴 예쁜 여아 ‘입도선매’ 하기도


△김정은 자신과 김일성 김정일 세사람 동상 건립에만 2016년 한해 466억 탕진

△서옥식 박사,“인간 백정에 변태적 이런 성범죄자 서울 오면 환영 받겠나?”

△“어떻게 최고 지도자란 사람이 자기 인민을 성적 도구로 삼을 수 있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현대판 성노예(sex slavery)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곳은 북한 일 것이다. 북한의 이른바 ‘성노예 제도’는 김일성 집권기인 1975년 처음 만들어져 김정일, 김정은 대(代)에 이어지고 있으며 통상 기쁨조(Pleasure Squad)로 불린다. 인터넷 위키 백과사전은 기쁨조를 ‘Kippumjo’ 또는 ‘Gippeumjo’로 음역해 등재하고 있으며 영어로는 Pleasure Group, Pleasure Groups, Pleasure Squad, Pleasure Brigade, Joy Division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쁨조는 성적 봉사(sexual services)를 제공하는 만족조(satisfaction team), 마사지 등 피로 해소를 위한 행복조(happiness team), 춤이나 노래 등 여흥을 선사하는 가무조(dancing and singing team), 각종 행사에 참가하는 행사조(team for event)로 그 역할이 분류된다.

  

위키 백과사전은 기쁨조에 대해 “조선노동당 고위 간부들과 그 가족, 그리고 때때로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저명 손님들에게 기쁨을 제공하기위해, 주로 성적 쾌락과 여흥을 베풀기 위해 북한 국가 원수(현재 김정은)에 의해 운용되는 여성 그룹들로, 그 수효는 약 2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The Kippumjo or Gippeumjo is an alleged collection of groups of approximately 2,000 women and girls that is maintained by the head of state of North Korea for the purpose of providing pleasure, mostly of a sexual nature, and entertainment for high-ranking Workers' Party of Korea (WPK) officials and their families, as well as occasionally distinguished guests.)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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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현 북한 노동당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은 아버지 3년상이 지난 2015년 초 기존 기쁨조를 전원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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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북한에는 김씨 일가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만수무강연구소’ 란 곳이 있다.


김일성 때 설립된 이곳에선 농장과 함께 꿩 목장, 돼지 목장, 칠면조 목장, 수산사업소 등을 갖춰놓고 정력 향상 등 몸 보신에 좋다는 각종 식재료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도 하지만 진귀한 식재료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일도 맡아서 한다. 김정일이 생전에 좋아했던 당나귀 고기나 맹고, 두리안 등 열대 과일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시로 대량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의 몸 보신을 위해서는 마리당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원숭이도 수입하고 있다. 만수무강연구소의 모든 식재료는 가공되기 전 반드시 영양과 맛, 독극물 테스트를 포함해 수십번에 이르는 검열을 거쳐야만 비로소 김정은의 식탁에 올려진다. 김씨 일가의 체질에 맞는 음식물 가공 및 조합을 위해 모르모트(기니 피그), 토끼, 백쥐 등을 이용한 생체실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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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조 선발 및 관리 부서는 조선노동당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5과 라는 곳이다. 이 곳은 북한판 채홍사(採紅使)와 채청사(採靑使)사로 김 부자의 흥청(興淸)을 뽑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쁨조원들은 명목상 호위총국 인민군 군관 대우를 받는다. 조원들은 김정일 이전까지는 소위 계급 군관이었으나 김정은 때 들어 조장은 대위, 조원은 중위로 격상됐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 주민들이 ‘돼지우리’(김정은을 돼지**에 비유해 생긴 말)라고 부르는 김정은 관저나 노동당 중앙당사에 마련된 특별 거소, 전국에 산재한 김정은 별장과 초대소등에서 함께 지낸다. 기쁨조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집에 갈 수 없으며 당연히 가족도 만날 수 없다.

  

한 번에 뽑는 기쁨조 인원은 만족조, 행복조, 가무조, 행사조를 합쳐 50명 정도. 1차로 선발인원의 100배에 달하는 5천명을 북한 전역에서 추천 받아 추천서와 서류심사 등을 통해 10배수인 500명으로 압축한다. 노동당 비서국은 다시 질병검사와 처녀성 검사 등 각종 검사와 개인 면접을 거쳐 50명을 최종 합격시킨 후 사진과 함께 최종심사보고서를 김정은(과거에는 김정일)에게 제출해 결재를 받는다. 이러한 모집은 연간 2-3회에 달한다.

  

추천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당 제5과에서 해마다 전국의 여자고등학교를 순시하면서 최고의 소녀들을 선발, 1-3등급으로 분리해 김정은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 9-10세의 여아들도 미모가 출중하면 노동당 제5과 담당자가 해당 초등학교를 방문해 이른바 입도선매(立稻先賣)식으로 스카우트한 뒤, 추후 각종 검사 절차를 거쳐 기쁨조원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선발된 50명의 기쁨조는 2인 1조로 합숙생활을 하며 약 6개월간 교육을 받게 된다.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우기도 한다. 만족조는 술 시중 드는 법, 술 접대시의 복장과 매너, 상대를 목욕시키는 법, 성적 봉사 잘하는 훈련, 피임법을 교육받으며 외국 포르노 영상을 통해 성 테크닉에 대한 기술을 연마하기도 한다. 행복조는 물리치료 전문의로부터 안마, 마사지, 지압 등 피로회복 전문 기술을 익힌다. 가수나 댄서 출신이 주를 이루는 가무조는 흥을 돋우기 위한 노래와 춤을 배우게 되며 이후 2주간의 해외 견학을 다녀와 김정은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기쁨조로 선출된 후에도 만 25세로 퇴임할 때까지 검사는 끊이지 않는다. 1년에 신체검사 등 3-4차례의 각종 검사를 받고 잘못해서 상대남의 아이를 임신하는 등 부적격 판정이 나면 즉시 해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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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으로 변태적 기질이 다분한 김정일은 1977년부터 매년 시·도 예술전문학교 졸업반 여학생 가운데 얼굴이 예쁜 30여 명을 선발, 평양적십자병원 의대에 1년간 기본간호교육을 마치게 하고 홍콩·마카오 등지에 파견하여 안마술 등 단기 연수를 시킨 다음 자신의 집무실·공관·별장 등에 배치하여 성 노리개감으로 삼았다. 또 영화배우 유진희(‘당의 참된 딸’ 주인공)·홍영희(‘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최삼숙·이정순·채수련·오화자·고지미 등 10여 명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10여명, 전용타자수, 담당간호사 등 숱한 여자들과 성적유희를 가졌다.

 

김정일은 이들에게 공훈 배우 칭호를 수여하고 아파트나 고급시계, 보석 등을 선물했다. 김정일은 주말마다 각종 연회를 열고 무용수들에게는 나체로 춤을 추게 하며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 등 참석자들로 하여금 이들을 애무토록 한 뒤 즐기는 등 변태적 음란 기질을 보여왔다.

  

러시아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Komsomolskaya Pravda)는 1997년 9월 23일 김정일의 변태적 성생활을 폭로하는 기사에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김정일은 최소한 10명의 사생아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수령과의 잠자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쁨조를 비롯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여성 편력을 소개한 뒤, “우리(러시아) 여성들도 김정일의 관심을 비켜가지 않았다”며 “러시아 여성 연예인들이 엄청난 ‘공연료’(사실은 화대)를 받고, 김정일 개인 손님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같은 러시아 여성 연예인들의 평양 방문은 북한 특수기관에 의해 비밀리 이뤄지고 있으며, 러시아 최고 인기 여가수 알라 푸가초바(Alla Pugatcheva)도 1991-1992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도 김일성,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여성들과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반에는 초대소나 별장 등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2014년 과체중으로 인한 다리 이상과 발목 수술 이후엔 전국 30여개에 이르는 특각(特閣)이란 이름의 초대소·별장에서 기쁨조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지는 2015년 4월 2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당시 직책)이 새로운 기쁨조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라프와 접촉한 북한 소식통은 ‘기쁨조’였던 여성들이 각자 맡은 일에 따라 다양한 ‘선물’을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 각지에 있는 초대소에서 관리직이나 하우스키퍼로 일했던 경우에는 미화 2천 달러와 가전제품을 받았고, ‘진짜 기쁨조’는 그 두 배의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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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기쁨조에게서 태어난 사생아를 두고 있다. ‘제갈’이란 성의 기쁨조에게선 ‘김현’이란 이름의 사생아가 있었는데, 김일성 사망 7주기인 2001년 김정일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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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현재 김정은이 사용하는 전용별장은 초대소, 특각, 전시 지하벙커의 세 종류로 분류된다. 별장과 초대소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됐던 1974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후 간부들의 과잉 충성과 맞물리면서 별장·초대소 건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 전국에 180개로 추산되는 초대소는 지금 김정은이 지방 출장을 가거나 잠깐 쉴 때 사용하는 곳으로, 주로 24시간 이하의 짧은 시간 활용된다. 초대소는 오지마을이나 구석진 국경 지역에 만들어진 별장이다.

 

초대소는 ‘1호 지역’으로 분리돼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다. 언제 올지 모르는 김정은의 기습 방문을 위해 일년내내 대기 중이다. 북한에는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만, 과거 김정일은 물론 김정은이 한번도 들르지 않은 채 ‘관리’만 되고 있는 초대소가 사용되는 초대소보다 더 많다고 한다. 실제 시골 아낙네들이 차가 안 다니는 초대소 1호 도로에 곡식을 말리려고 널어놨다가, 보위부에 끌려가 호되게 당했다는 이야기는 북한에 널리 전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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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각종 역할을 담당하는 기쁨조들이 별장에 상주하고 있다. 선발된 기쁨조 중 1등급은 김정은 지근거리에서 봉사하고 2등급은 각 별장에 파견된다. 3등급은 당중앙 고위간부들 비서나 간호사, 중앙기관 간부 비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남한을 비롯한 해외 인사들을 매수하기 위한 미인계로 활용된다. 별장에는 만족조와 안마조와 가무조가 상주, 언제든지 김정일을 기쁘게 하기 위해 대기 중이라고 한다.

  

한편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017년 4월 5일(현지 시각) 김정은이 집권 5년차인 2016년 한해동안 ‘기쁨조’ 속옷 구매비용으로 약 38억 원을 지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세계 무역정보를 제공하는 ‘트레이드 맵’을 인용, “지난해 김정은이 ‘기쁨조’(Pleasure Squad) 속옷 구매비용으로 270만 파운드(약 38억 원)를 지출했다”면서 “중국에서 여성 속옷인 가터와 코르셋을 수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기쁨조는 김정은의 쾌락을 위해 젊은 여성들로 구성됐다”며 “한 탈북자에 따르면 이들은 기쁨조에 들어가기 전 처녀임을 확인하는 의학 검사를 강제로 받는다”고 말했다.

  

‘트레이드 맵’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은 ‘기쁨조’ 속옷 외에도 샴페인·말·화장품 구매에 수백만 파운드를 지출했다. 신문은 ‘2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하루에 650g의 식량만을 배급받는 등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유엔의 발표내용을 인용하면서 “그러나 김 위원장은 샴페인, 와인, 초콜릿, 스위스 치즈 등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또 2016년에 자신과 할아버지, 아버지의 동상 제작을 위해 3300만 파운드(약 466억 원)의 비용을 퍼부었다. 또 독일 회사를 통해 550만 파운드(약 77억 원) 상당의 사치품을 수입했다. 해당 리스트에는 ‘증류주’ 23만5000파운드(약 3억3000만 원) ‘와인·샴페인’ 11만3000 파운드(1억5000만 원) ‘독일 맥주’ 5만6500파운드(약 8000만 원)의 독일 맥주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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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allinkorea.net/a.html?uid=38920&page=1&sc=&s_k=&s_t=

 

 

 

 

 

 

 


대를 잇는  노예교왕조 영생 식인마들이 우리 민족 다 죽이고 다 잡아먹고 있습니다.

촛불 기쁨조는 깡총깡총 만세만세 눈물범벅입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바람앞의 촛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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