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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졸업식 축사 2017.02.24 14:02 | 1567
작성자 비서실 (ceh312) PYH2017022420060005100_P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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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졸업식 축사

 

2017.2.24() / 부산대학교 


 
효원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의대 67학번 정의화입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저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신 전호환 총장님을 비롯한 교직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자리에 서니, 제 머리 속에는 50년 전 학창시절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마감을 눈앞에 두고 기사가 모자라 쩔쩔 매던 일, 총장배 야구대회 결승에서 홈런을 치고 기뻐했던 일, 그 기억 하나하나가 사진처럼 선명합니다.
 
제가 쥐띠라 그런지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는 편입니다. 예과 시절부터 사진동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였고, 독서나 철학에도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쇼펜하우어,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의 책들을 읽고 그들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첫 역경은 의예과 2학년 말에 합기도를 배우다 급성 디스크가 생긴 것입니다. 좋아하던 야구를 비롯해 다른 운동도 일체 못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활발했던 성격은 우울하게 변해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 통증이 오고 다리가 당기고 아프니까 자연히 의기소침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지더라도 의사로서의 평생을 좌우할 학업만은 질 수 없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1967년부터 1973년 졸업할 때까지 그 시기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는 일상과도 같았습니다. 당연히 시위에 참여하였던 나는 결국 학생신분으로서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고 언젠가 내가 힘을 가졌을 때 나라를 고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 학창시절의 꿈과 열정, 밤새워 고민했던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효원캠퍼스는 제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는 ’, 그리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게 해주는 판단력이란 더없이 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효원인 모두가 대학시절의 소중한 경험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대학시절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고 빛나게 만들 수 있는 단련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자양분으로 하여 이 자리의 후배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더 큰 리더들로 성장해갈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인생의 진짜 시련은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전공의 시절 지방대 출신으로서의 설움과 시련, 당시 군사독재시절의 고뇌와 역경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던 아름다운 복수를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복수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최고의 의사, 더 큰 인물이 되는 그 자체입니다.’
 
이런 결심으로 더욱 열심히 배우고 일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세계적인 신경외과 교수님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기간은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분들도 봉생병원을 아실 겁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봉생병원 원장이었습니다.
 
유학에서 귀국 후 봉생병원을 일으키는 데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43년 전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당시 봉생신경외과 원장이시던 장인어른께서 대왕코너 빌딩 화재로 소사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존경했던 장인어른의 갑작스런 별세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당시 95%에 달하던 살인적인 상속세 때문에 병원마저 존폐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위기의 나날을 오직 우직스럽게 남다른 정의감으로 나아갔습니다. 정직과 성실함이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런 마음가짐과 당시 60여 명이던 직원들과의 굳은 신뢰를 기반으로 결국 위기를 이겨냈습니다.
 
뇌혈관 신경외과 전문의사로 학계의 인정을 받았고, 이제는 1,200명의 일터인 종합병원 봉생병원을 만들었으니, 나름대로 아름다운 복수에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항상 이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효원인 여러분께서 누구보다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을 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 사회 곳곳의 병증에는 늘 마음이 쓰였습니다. 계층간, 지역간, 그리고 남북간 분열과 갈등... 이런 심각한 병증을 그냥 내버려 두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고쳐야겠다는 결심으로 저는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의사 출신이 의사나 하지 무슨 정치야...”라고 수근 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대학시절의 디스크, 그리고 인턴 시절 겪었던 서러움을 이겨내고 봉생병원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효원인으로서의 뚝심 있는 도전정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뚝심을 정계에서 다시 한 번 발휘했습니다.
 
20년 간 국회의원을 다섯 번 연속으로 했고, 부산대학교 출신으로는 최초의 국회의장을 지냈습니다.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모교의 은혜를 갚을 수 있어 참으로 뿌듯했습니다.
 
20년 정치를 하면서도 효원인의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당파적인 이익으로 국회를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국회의장으로 지내면서는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임기 내내 부당한 압박과 공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툭하면 저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했습니다.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국가비상사태에 적시에 대응하기 위한 국회의장의 권한입니다. 당연히 엄격한 요건 하에 최소화되어야 하지만, 예전에는 다수당이 날치기 처리하는 데 악용되곤 했습니다.
 
다수당은 직권상정하려고 하고, 소수당은 직권상정을 막으려다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폭력국회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우리 국회의 일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제게 그런 거수기 의장 역할을 계속하라고 강요한 겁니다.
 
저는 부당한 압박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새누리당 단독으로 처리하자는 요구도, 경제활성화법을 직권상정하라는 부당한 압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야당의 도를 넘는 반대에는 단호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회의장의 당연한 임무라고 믿습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삼권분립 정신과 의회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내고, 거수기 국회라는 오명을 씻어 낸 것을 저는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봉생병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박수 받으며 임기를 마친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대학시절을 관통했던 신조인 정직과 정의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직과 정의는 현재 저의 신념이자 철학인 공도와 정명의 바탕을 이룹니다. 공도는 공직자의 도리이며, 정명은 직책에 맞게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큰 이유중에 하나가 사회의 지도자, 중요 지위에 있는 공직자들이 공도와 정명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정의로운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고 노력하는 , 그것보다 강한 힘은 없습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이제 때로는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망망대해로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맞을 세상은 희망과 기쁨보다는 갈등과 슬픔, 각종 유혹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수많은 비정상과 불공정과 불평등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자본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손과 미래를 위해 우리는 기필코 승리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대의를 가지고 이겨내길 바랍니다.
결코 이기적 자세로 타협하려 마십시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 지는 삶보다 자신이 진정한 인생의 승자가 되길 원한다면 공도와 정명을 지켜주기를 당부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 드린다면 어떤 경우에도 주저하거나 두려워 말고 직접 부딪치길 권합니다.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플랭클린 루즈벨트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어떠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만 겸손과 절제, 완벽한 준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늘 걱정한 것은 스스로 얼마나 삶의 과정에 충실한가였습니다.
 
살아가면서 작은 결과에 성취에 연연하기보다 긴 과정을 보십시오.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꾸준히 전진하기 바랍니다.
 
또한, 나를 넘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더불어 함께 잘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길 바랍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모든 것은 사필귀정 한다는 순리를 배웠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여러분께 그것을 증명했다고 자부합니다.
오늘 정든 캠퍼스를 떠나는 젊은 효원인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에게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물을 지을 때 설계도가 중요하듯이 여러분은 스스로의 인생 설계도면을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살아가면서 설계도를 보완해가며 완벽한 삶을 성취하길 바랍니다. 계획 없는 삶은 설계도면 없이 건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일까요?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 이유가 행복의 원천은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여유롭고 소박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우리 내면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은 배려와 용서, 봉사와 감사를 실천할 때 커집니다.
 
부산대학교는 한국 최고의 대학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산대가 배출한 여러분은 한국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념과 의지, 믿음과 노력에 여러분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앞날이 달려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길에 영광이 함께하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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